언어의 세계.13-표준어, 사투리
1. 표준어는 기준인가, 권력인가
표준어는 단지 언어의 ‘기준’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정한 권위 있는 언어이며, 따라서 권력의 언어로 작동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표준어는 국가 통합과 근대화를 이유로 제정되었지만, 그 기준은 수도권 중심, 특히 서울말을 중심으로 했다. 그 결과, 표준어를 쓰는 자는 ‘정상’이며, 사투리를 쓰는 자는 ‘비표준’이 된다. 이를 통해 언어는 단순한 전달 수단을 넘어서 사람을 구분하고 위계를 만드는 도구가 되었다. 예를 들어, 구직 면접에서 “말투가 좀 촌스럽네요”라는 피드백은 단순한 언어 습관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개인의 출신 지역과 사회적 배경에 대한 암묵적 차별을 드러낸다. 이는 ‘표준’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폭력적으로 쓰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2. 사투리는 지역의 정체성이다
사투리는 단순한 언어 변형이 아니다. 그것은 그 지역의 문화, 사고방식, 정체성이 녹아든 언어다. 예컨대 전라도의 느긋한 억양, 경상도의 단호한 어미, 충청도의 여백 있는 말투는 단순한 발음의 차이가 아니라 그 지역 사회의 리듬과 정서를 반영한다. 경상도에서 “밥 무라”라고 말할 때, 그 짧고 무뚝뚝한 문장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학교나 언론, 기업에서는 여전히 사투리를 교정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표준어를 써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이 정체성마저 억압하는 구조로 이어진다. 사투리를 쓰지 않으면 고향에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사투리를 쓰면 사회에서 ‘결핍된 자’로 취급받는 이중 억압이 존재하는 셈이다.
3. 언어 차별은 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다
많은 사람들은 사투리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교정을 권한다. 하지만 ‘사투리를 고쳐라’라는 말은 곧 ‘너는 지금의 너로는 부족하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는 언어 차별이 단지 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차별임을 드러낸다. 특히 공적 담론에서 표준어만을 사용하는 문화는 소외된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지우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정치 연설이나 뉴스 인터뷰에서 사투리를 쓰는 이는 거의 없으며, 그 자체가 비전문적이거나 비논리적인 말투로 취급된다. 이처럼 언어의 위계는 사회적 위계와 직결된다. 사투리를 차별하는 문화는 지역성을 차별하는 문화이며, 궁극적으로는 다양성을 거부하는 사회의 단면이다.
4. 다양성의 언어로 나아가기 위해
이제는 표준어 중심의 획일성을 넘어, 다양한 언어가 공존하는 사회를 모색해야 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나 유튜브 지역 콘텐츠의 성공은 사람들이 사투리의 생동감과 진정성에 열광한다는 증거다. 다만, 그것이 단순한 캐릭터성이나 ‘웃음 코드’로 소비되지 않도록, 사투리도 공적 담론의 언어로 당당히 설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실제로 경상도나 전라도 출신 국회의원들이 사투리로 연설을 하면 비판받는 반면, 서울 출신은 억양에 대해 논란이 없다는 점은 여전히 언어의 불균형을 드러낸다. 사투리는 우리말의 다양성이며, 그 존재만으로도 언어는 더 풍부하고 정교해진다. 사투리를 존중하는 태도는 결국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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