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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세계

언어와 젠더: 단어 하나에도 성별이 있는 사회

언어와 젠더: 단어 하나에도 성별이 있는 사회

언어의 세계.23-성별이 있는 언어


1. 언어 속에 내재된 젠더: 단어와 문법에서 드러나는 성별 구분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 사회의 가치와 관념을 반영한다. 특히 젠더 문제는 언어 속에 깊숙이 내재되어 있다. 많은 언어는 명사, 대명사, 동사 활용에서 성별 구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도 직업명이나 호칭에 ‘남성형’ 혹은 ‘여성형’이 존재하며, 이는 사회적 성 역할을 반영한다. ‘의사’라는 단어는 성 중립적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여의사’, ‘남의사’라는 표현이 따로 존재할 때 이미 성별 구분을 전제로 한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같은 성별 문법이 강한 언어들은 명사와 형용사가 남성형, 여성형으로 나뉘고, 심지어 직업명도 성별에 따라 다르게 표현된다. 이런 언어적 특징은 사용자로 하여금 성별을 자연스럽게 의식하게 만들며, 젠더 고정관념을 강화하거나 도전하는 매개체가 된다.

2. 성차별적 언어와 젠더 고정관념의 강화

성별이 언어 구조에 깊게 뿌리내려 있을 때,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에서는 젠더 차별적 인식과 고정관념이 지속될 위험이 크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 ‘여자답다’는 표현은 ‘남성답다’와 달리 긍정적 의미보다 제한적이고 고정된 역할을 암시하는 경우가 많다. 직업명 역시 ‘여비서’, ‘여교사’처럼 여성임을 강조하는 반면, 남성 직업명은 성별 표시 없이 쓰이는 경우가 많다. 영어에서도 ‘fireman’(소방관 남성형)과 ‘firefighter’(중립적 표현) 간의 차이가 젠더 편향의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처럼 언어가 젠더 역할을 어떻게 명명하고 구분하는가는 사회적 성평등 의식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언어학 연구는 성차별적 언어가 젠더 고정관념을 강화하여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기회를 제한하는 데 작용함을 보여준다.

3. 젠더 중립 언어와 성중립적 언어 사용의 확산

최근 전 세계적으로 젠더 평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흐름이 강해지면서, 성중립적 언어 사용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한국어에서는 ‘여자’나 ‘남자’를 굳이 명시하지 않고 ‘간호사’, ‘교사’, ‘직장인’처럼 중립적 표현을 선호하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영어권에서는 ‘he’ 대신 ‘they’를 단수 대명사로 사용하는 것이 공식화되고, 직업명도 ‘policeman’에서 ‘police officer’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언어 변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사회가 젠더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 다양성과 포용성을 인정하려는 의지의 표현이며, 언어가 곧 사회 변화를 견인하는 도구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과정은 쉽지 않다. 기존의 언어 체계와 사용자들의 습관, 그리고 문화적 저항 때문에 성중립 언어 정착에는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4. 언어 변화와 사회 인식: 젠더와 언어의 상호작용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지만, 동시에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도 가진다. 젠더 중립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젠더 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새로운 성 역할 모델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다. 예를 들어, 언어 내 성별 구분을 최소화한 핀란드어는 다른 유럽 언어보다 성평등 지수가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반면, 언어에서 성별 구분이 명확한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는 종종 전통적 성 역할이 강한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언어적 변화를 통한 젠더 평등 증진은 단순한 문법적 수정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성평등 문화를 구축하는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결국, 단어 하나에도 성별이 있는 사회를 넘어, 성별을 초월한 존중과 포용의 언어 문화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평등에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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