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중간에 끼어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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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세계.53 - 언어에서 드러나는 권력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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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어들기의 본질은 ‘권력’

일상 대화에서 누군가의 말을 끊고 중간에 끼어드는 사람은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성격이 급하거나 활달하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언어학과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끼어들기를 권력 감각이 반영된 언어적 행위로 본다. 상대방의 말을 중단시키고 자신의 의견을 개입시키는 행동은 무의식중에 대화의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이는 특히 회의나 토론처럼 발언권이 중요한 환경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자신이 중심에 서고자 하는 욕구가 언어 행동으로 표현되며, 듣는 이는 흐름을 잃고 위축되기 쉽다. 사회학 연구에 따르면 남성이 여성의 말을 더 자주 끊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젠더 권력의 구조가 언어를 통해 드러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한 언어 습관이 아니라 사회적 위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발언을 끊기는 경험은 청자의 자존감에 영향을 주며, 반복될 경우 자기 표현의 동기를 약화시킨다. 따라서 끼어들기는 말의 내용보다 발언 기회의 통제라는 점에서 상호작용의 권력 구조를 보여준다.

 

문화와 세대에 따라 달라지는 끼어들기 해석

끼어들기의 해석은 문화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이탈리아처럼 개인의 표현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끼어들기가 적극적인 참여로 여겨질 수 있다. 반면, 일본이나 한국처럼 상호 존중과 예의를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말을 끊는 행위가 무례하고 공격적인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차이는 발화의 순서를 조율하는 방식에서 드러난다. 한국에서는 상대가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기본 예절로 여겨지며, 이를 어길 경우 대화의 흐름이 깨지고 감정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 그러나 세대 간에는 차이가 나타나기도 한다. 젊은 세대는 빠른 템포의 대화에 익숙해져 있어 적절한 타이밍에 끼어드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반면, 중장년층은 여전히 말을 끊는 행위에 대해 불쾌함을 느낄 수 있다. 즉, 끼어들기의 의미는 단순히 ‘말을 가로챘다’는 행위보다, 그것이 어떻게 해석되고 수용되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맥락과 관계의 성격, 문화적 배경이 모두 언어의 흐름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끼어들기라는 행위는 말의 내용만큼이나 말의 방식과 태도, 분위기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언어의 사용 방식은 그 사회가 중시하는 가치관을 반영하며, 같은 말이라도 어느 상황에서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끼어들기의 적절성을 판단할 때, 단지 자신의 입장뿐만 아니라 상대의 문화적 배경과 기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끼어들기가 대화자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

말을 끊기는 경험은 단순히 일시적인 불쾌감을 넘어, 자기 표현에 대한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특히 반복적으로 말을 중단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며, 점점 더 대화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직장 내 회의나 학교 수업 등 의견 개진이 중요한 장면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자신의 발언이 자주 끊기는 경험은 언어적 위축감을 가져오고, 이는 전반적인 사회적 관계에도 영향을 준다. 연구에 따르면 발언 기회를 충분히 보장받지 못한 사람은 자기 효능감이 낮아지고, 집단 내 의사결정 참여도도 감소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자주 끼어드는 사람은 자신이 더 중요한 말을 한다고 착각하거나,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왜곡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인간관계에 장기적인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말하는 내용뿐 아니라, 말하는 방식 역시 관계의 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언어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상대와의 심리적 연결을 만들어내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결국 끼어들기의 빈도와 방식은 그 사람의 대화 태도와 사회적 민감성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언어적 침묵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낮추는 신호일 수도 있다. 반면,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로 끝까지 듣는 습관은 신뢰와 공감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건강한 대화를 위한 실천 전략

끼어들기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순히 말을 하지 말자는 접근보다는,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적절히 반응하는 소통의 기술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자신의 발언 욕구가 생겼을 때 잠시 멈추고 상대의 말을 다 들은 후 의견을 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또한,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은 반응어(“그래”, “맞아”)를 활용해 상대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는 상대에게 존중받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대화의 질을 높인다. 실제로 비폭력 대화(NVC: Nonviolent Communication) 이론에서도 상대의 감정과 욕구에 귀 기울이는 경청이 핵심 요소로 강조된다. 모든 대화가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할 때, 끼어들기는 점차 줄어들 수 있다. 특히 교육 현장이나 직장에서는 말하기 훈련뿐 아니라 듣기 훈련도 병행되어야 한다. 대화를 나누는 목적이 ‘이기기’가 아니라 ‘이해하기’라는 관점에서 출발할 때, 언어는 관계를 해치는 도구가 아닌 관계를 깊게 만드는 연결 수단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 속에서 끼어들기를 줄이고, 대신 귀 기울이는 법을 의식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 시작은 스스로의 말하는 습관을 되돌아보고, 나의 대화 방식이 타인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지 자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