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세계.51 - 어린이의 욕
1. 욕설도 언어다? 금기어의 언어학적 기능
욕설은 흔히 비속하고 공격적인 표현으로 여겨지지만, 언어학적 관점에서는 욕 역시 감정을 전달하는 한 형태의 ‘언어’로 간주된다. 사람은 화가 날 때 혹은 고통을 느낄 때, 즉각적으로 단어를 내뱉음으로써 감정을 표현한다. 이때 사용되는 말 중 많은 부분이 욕설이나 금기어다. 특히 욕은 감정의 강도를 높여주는 기능이 있다. 같은 불만을 말하더라도 욕을 섞어 표현할 때 그 분노나 좌절감은 훨씬 강하게 전달된다. 심지어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욕이 유대감의 표현으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야 이 자식아~”라는 말은 상황에 따라 친근함이나 장난의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한 욕은 긴장감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실험에서도 고통을 느낄 때 욕을 사용하면 인내력이 증가하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욕설은 단지 '나쁜 말'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는 사회적 언어이며, 그 사용은 문화, 연령, 관계에 따라 변화한다.
2. 아이는 언제, 어떻게 욕을 배우는가?
아이들이 욕을 배우는 시기는 보통 말이 트이고 사회적 상호작용이 활발해지는 만 3세 전후로 보고된다. 초기에는 그 단어가 욕인지조차 모른 채 단순한 ‘재미있는 소리’ 혹은 ‘어른이 쓰면 안 되는 특별한 말’ 정도로 인식한다. 특히 아이들은 부모나 주변 어른들이 욕을 들었을 때 보이는 반응—놀라거나 제지하거나 웃는 모습 등—을 통해 그 단어가 특별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언어학적으로 이는 **‘금기어의 사회적 맥락 습득’**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씨X” 같은 단어를 장난처럼 말했을 때, 어른들이 당황하거나 웃는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이 단어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런 학습은 모방과 반응에 의한 간접 학습 방식으로 강화되며, 정서적으로도 각인된다. 특히 어린이는 반복을 통해 언어를 습득하기 때문에, 한 번 접한 욕설은 이후 유사한 상황에서 다시 사용되기 쉽다. 문제는 이 시기의 아이들은 그 단어의 진짜 의미나 사회적 무게를 이해하지 못한 채 사용하게 된다는 점이다.
3. 금기어 사용이 미치는 언어발달의 영향
욕설을 조기에 자주 사용하게 되면 아동의 언어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언어는 본래 감정과 사고를 정교하게 표현하는 도구다. 하지만 욕은 감정을 단순하고 즉각적으로 분출하는 기능에 그치기 때문에, 욕설을 지나치게 사용하는 아이는 복잡한 감정을 설명하거나 상황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연습이 줄어들게 된다. 이로 인해 언어 능력은 물론 감정 조절 능력까지 저하될 수 있다. 또한 욕은 대부분 공격적이며 적대적인 상황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아동이 욕을 자주 구사하면 또래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갈등이 잦아질 수 있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언어를 통해 규칙, 감정, 협력을 배워야 하는데, 그 언어가 욕 위주로 형성되면 사회적 학습이 왜곡될 위험이 있다. 부모나 보호자가 아이의 욕 사용을 단순히 “안 돼!”라고 제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욕이 왜 문제인지, 어떤 말로 감정을 표현하면 좋을지 함께 대화하며 언어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욕이 ‘위험한 말’이 아닌, ‘불완전한 표현’으로 전환될 수 있다.
4. 아이와 욕설 사이, 어른의 역할은 무엇인가?
욕설은 결국 어른들이 먼저 사용하는 언어다. 아이들은 자신이 가장 많이 듣는 말, 가장 자주 접하는 상황에서 언어를 학습한다. 가정에서의 대화, TV나 유튜브 영상, 놀이 친구들과의 상호작용이 모두 욕설 노출 경로가 될 수 있다. 특히 요즘 아이들은 짧은 영상 클립이나 게임 스트리밍을 통해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언어에 쉽게 노출되고 있다. 이때 어른들은 단순히 욕을 금지하는 것보다, 욕이 왜 문제가 되는지, 어떤 상황에서 왜 쓰는지를 이해시켜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아이가 욕을 썼을 때 즉시 혼내기보다, 그 감정을 어떤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었는지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짜증 나서 그 말 했구나. 다음엔 그냥 ‘나 지금 화났어’라고 말해볼까?” 같은 대화가 효과적이다. 욕설은 감정 표현의 한 방법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다. 나아가 욕이 난무하는 사회적 환경을 줄이는 노력 역시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언어는 환경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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