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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세계

소수자의 언어: 장애, 이주민, 성소수자의 언어 현실

장애, 이주민, 성소수자의 언어 현실
위 이미지는 본 게시물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된 AI 이미지입니다.

언어의 세계.47-소수의 언어


1. 소수자는 왜 ‘다르게’ 말해야 할까?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은 일상에서 단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획된 언어의 경계 안에서 말하게 된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은 수어를 통해 의사를 표현하지만, 수어는 아직도 많은 제도적 공공장소에서 ‘정식 언어’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주민은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해도 여전히 ‘외국인’ 억양이라는 이유로 언어적 배제를 경험한다. 성소수자는 자신의 정체성과 감정을 설명할 단어가 부족해, 늘 '설명'하거나 '숨겨야' 하는 위치에 놓이기도 한다. 이처럼 소수자의 언어는 단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을 넘어서, 사회가 허용한 방식으로만 말할 수 있도록 제한되는 언어 현실을 드러낸다.

2. 언어에는 위계가 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평등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언어에도 위계와 권력이 존재한다. 누군가의 말이 더 ‘공식적’이고, ‘표준어’이며, ‘듣기 좋은 말’로 여겨지는 반면, 다른 사람의 언어는 ‘어눌하다’, ‘촌스럽다’, ‘듣기 불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단순한 발음이나 억양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말할 자격을 갖고 있는가라는 사회적 인식 문제다. 특히 소수자 집단의 언어는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공공기관에서 수어 통역이 제공되지 않거나, 이주노동자를 위한 다국어 안내가 형식적으로만 제공되는 현실은 언어 불평등의 대표적인 사례다. 언어는 단지 말하기가 아니라, 사회에 ‘들릴 권리’를 갖는 것이다.

3. 말할 수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미국의 언어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언어는 단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사회에 선언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소수자의 언어 현실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장애인, 이주민, 성소수자가 자신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말할 수 없다면, 그들은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병원에서 ‘성별 정정 전 이름’으로만 불리는 것,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단 없이 ‘문제 행동’으로만 해석되는 것 등은 모두 존재의 언어적 박탈에 해당한다. 우리가 언어를 어떻게 보장하느냐는, 곧 누구를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느냐와 직결된다.

4. 언어 접근성은 권리다

소수자의 언어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단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자’는 감정적 접근을 넘어서야 한다. 언어는 접근성의 문제이자 권리의 문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안내, 청각장애인을 위한 실시간 자막, 이주민을 위한 다국어 정보 제공, 성소수자를 위한 포괄적 표현 등이 일상 속에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말할 수 있는 권리’, ‘들릴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다양성과 포용을 외쳐도 그것은 선언에 그칠 뿐 실천이 될 수 없다. 언어는 사회를 바꾸는 출발점이다. 소수자의 언어를 ‘특수한 것’이 아니라 모두의 언어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진짜 평등한 사회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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