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언어의 세계

외국어를 잘하려면 모국어부터? 이중언어 습득의 비밀

외국어를 잘하려면 모국어부터? 이중언어 습득의 비밀
위 이미지는 본 게시물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된 AI 이미지입니다.

언어의 세계.50 - 모국어와 외국어


외국어를 빨리 배우고 싶다면, 영어 유치원을 보내야 할까?
아니면 어릴 때부터 영어 노출을 극대화해야 할까?
많은 부모들이 묻는다.
하지만 뇌과학과 언어학의 대답은 조금 다르다.
“모국어부터 제대로 익혀야 한다.”
그게 외국어까지 잘하는 아이로 가는 첫걸음이다.

1. 이중언어 습득은 '두 배의 언어 능력'일까?

‘이중언어(bilingualism)’를 구사하는 사람은 두 가지 언어를 능숙하게 쓸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두 언어를 배우는 아동은 언어 천재라는 말까지 듣곤 한다. 하지만 이중언어 습득은 단순히 단어를 두 배로 외운다는 개념이 아니다. 이는 뇌의 언어 처리 시스템이 두 언어를 모두 인지하고 구분하는 고차원적인 능력이며, 그만큼 복잡하고 섬세한 발달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아동기 이중언어 습득은 언어적 민감기(critical period)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예컨대, 충분한 언어적 상호작용 없이 단순히 외국어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언어가 체득되지 않는다. 언어는 단어를 넘어서 문법 구조, 문맥 이해,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성장한다. 따라서 두 언어 모두 건강하게 습득되기 위해선 ‘언어 노출량’ 못지않게 ‘언어 사용의 질’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기초가 되는 것이 바로 모국어의 안정성이다.

2. 모국어가 흔들리면 외국어도 불안정하다

아이들이 새로운 언어를 잘 습득하려면, 먼저 자신이 속한 언어 환경과 정체성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곧 모국어가 단단히 자리 잡혀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언어학 연구에 따르면, 모국어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어만 주입하는 경우, 두 언어 모두 어설프게 구사하는 ‘이중언어 반지능(balanced semi-lingualism)’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이 상태의 아이들은 언어적 유창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학습능력과 자기표현력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언어는 단지 말하기 도구가 아니라, 사고력과 사회성의 핵심 매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시간”이나 “약속”이라는 개념을 한국어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영어 표현 "on time"을 배운다고 해도, 그 의미가 체화되지 않아 실생활에서 쓸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정서적인 표현(예: 속상해, 억울해 등)은 대부분 모국어를 통해 정리되는데, 이 기반이 약하면 외국어를 잘 배워도 깊이 있는 소통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외국어 학습의 성공을 원한다면, 먼저 모국어로 사고하고 느끼고 표현하는 능력을 충분히 키워야 한다.

3. 이중언어 아동이 겪는 언어 혼란과 그 원인

이중언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종종 언어 간 경계를 넘나들며 혼합 언어를 사용한다. 이를 ‘코드 스위칭(code-switching)’이라 하며, “엄마 나 school 갔다 왔어” 또는 “banana 먹고 싶어” 같은 문장이 대표적이다. 이 현상은 발달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언어에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정리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구분이 모호하게 유지되거나, 문법적 오류가 고착되면 문제가 된다. 특히 부모가 한 언어로 말하고, 교육기관에서는 다른 언어로 지도하면서도, 두 언어 간 구조적 차이를 설명해주지 않는 경우 아이는 혼란을 느끼기 쉽다. 예컨대 영어는 주어-동사-목적어(SVO) 순서를 따르지만, 한국어는 주어-목적어-동사(SOV)를 따르므로, 문장 구조의 차이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두 언어 모두 부정확하게 사용하게 된다. 또한, 정체성 혼란 역시 중요한 변수다. 어떤 언어를 쓸 때 ‘자기답다’고 느끼는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언어 자체에 대한 불안이 생긴다. 결국 이중언어 습득은 단지 언어의 기술이 아니라, 심리적 안정감과 사회적 소속감까지 포함하는 복합적인 과정이다.

4. 건강한 이중언어 환경을 위한 실질적 전략

효율적인 이중언어 습득을 위해서는 단순한 노출보다 ‘언어 사용의 맥락’을 분명히 설정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는 ‘한 사람, 한 언어 원칙(one person, one language)’이다. 예를 들어 엄마는 항상 한국어로, 아빠는 영어로 소통하면 아이는 상황별로 언어를 자연스럽게 분리하여 인식하게 된다. 또한 ‘시간에 따른 분리(time and place method)’ 전략도 유용하다. 특정 요일이나 활동(예: 영어로 책 읽는 날, 한국어로 요리하는 날 등)을 통해 언어를 구분하면 기억의 회로도 명확하게 분리된다. 중요한 것은 억지로 외국어를 주입하기보다, 아이가 ‘이 언어는 이럴 때 쓰는구나’ 하고 의미 기반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또한 부모나 교육자의 태도도 중요하다. 외국어를 못하면 실망하거나, 모국어 사용을 질책하는 방식은 오히려 언어에 대한 부정적 정서를 유발해 전체 학습 효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 아이에게 언어란 세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도구다. 두 언어 모두를 건강하게 습득하려면, 그 기반이 되는 모국어를 먼저 사랑하고 존중해주는 환경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중언어 습득은 단순히 두 언어를 동시에 많이 듣는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의 뇌는 언어를 구조화된 체계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 기본은 바로 모국어의 문법과 어휘를 충분히 익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의미 있는 단어 덩어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외국어 단어만 외우면,
그건 단지 “소리 따라 하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모국어에서 주어·동사·형용사의 개념을 알고,
문장 구조를 인지한 후 외국어를 배우면
언어 간 연결고리를 형성해 더 빠르고 깊게 익히게 된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모국어 발달이 빠른 아이일수록 외국어의 문장 구성도 빠르게 익히는 경향이 있다.
이건 단순한 기억력 문제가 아니다.
언어를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의 차이다.

 

외국어 교육은 빠를수록 좋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언제’보다 ‘어떻게’**다.
아이의 머릿속에서 언어가 구조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어만 밀어 넣는 건,
두 개의 언어를 모두 얕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모국어는 뿌리다.
그 뿌리가 깊을수록, 외국어라는 가지는 더 멀리 뻗을 수 있다.
그러니 외국어를 잘하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게 진짜 이중언어 습득의 비밀이다. 

 

 

 


개인정보처리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