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세계+ [초등 고학년 11~13세] - 사춘기 아이와 소통을 이어주는 언어
1. 사춘기의 침묵, 단절이 아니라 변화의 신호
“학교 어땠어?”라는 질문에 “몰라요.”
“밥 먹자.” 하면 “나중에요.”
갑작스러운 말수 감소와 단답형 대답은 많은 부모들이 사춘기 아이에게서 처음 마주하는 변화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단순히 말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자율성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즉, 대화가 끊긴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는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려고 말을 줄이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이 침묵을 거부나 무시로 받아들이지 않는 어른의 태도다.
사춘기의 언어적 거리두기는 대화의 부재가 아닌, 새로운 대화 방식을 모색하는 신호일 수 있다.
2. 아이가 듣고 싶은 건 ‘질문’이 아니라 ‘존중’
부모의 대화 시도는 대개 “오늘 뭐 했어?”, “왜 그렇게 말해?”처럼 질문 중심이다.
하지만 사춘기 아이는 자신을 자꾸 파헤치는 질문에 부담감이나 간섭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대화가 단절되는 가장 흔한 이유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 자꾸 말시키기’ 때문이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는 질문보다 감정 확인과 인정이 더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힘들어 보이네. 내가 도와줄까?”처럼 선택권을 남기는 말이 좋다.
사춘기의 아이는 단지 말하기를 멈춘 게 아니라, 말하고 싶은 방식을 바꿔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을 때 말해도 돼” 같은 문장이 훨씬 더 멀리 간다.
3. 말보다는 ‘말투’가 중요한 시기
사춘기 아이는 말의 내용보다 톤과 뉘앙스에 더 민감하다.
같은 “어디 가니?”라도, 감시하듯 묻는 말투와 관심을 담은 말투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이 시기에는 부모의 말이 비난처럼 들릴지, 지지처럼 들릴지가
대화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
또한 아이가 사용하려는 언어에 어른이 반응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귀찮아”라는 말을 들었을 때 “왜 그렇게 귀찮다고만 해?”보다는
“지금 쉬고 싶구나”라고 감정 언어로 변환해주는 피드백이 더 효과적이다.
사춘기 아이의 말은 다소 거칠고 무뚝뚝하더라도,
그 속에 담긴 신호를 해석하려는 이해의 언어가 소통을 이어주는 열쇠다.
4. ‘말을 걸지 않는 것’도 소통이 될 수 있다
사춘기의 대화는 꼭 말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같이 조용히 앉아 있는 시간, 함께 걷는 침묵, 아이가 좋아하는 영상에 함께 웃는 순간 등
비언어적 공감이 오히려 말보다 깊은 연결을 만들기도 한다.
“말을 해야만 소통이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함께 있는 시간의 질’을 높이는 것이 언어보다 강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또, 사춘기 아이는 듣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부모의 말뿐 아니라 말하지 않은 표정과 시선, 감정의 결까지도 받아들이고 있다.
말이 끊겼을 때가 아니라, 말 없이 함께할 수 있을 때 진짜 대화가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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