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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세계

사고와 언어: 우리가 생각을 ‘단어’로 하는 이유

사고와 언어: 우리가 생각을 ‘단어’로 하는 이유
위 이미지는 본 게시물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된 AI 이미지입니다.

언어의 세계.32-언어와 사고

“언어 없이도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하지만, 굉장히 깊은 언어학적 질문이다.
우리는 매일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생각하고, 그걸 말로 꺼낸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생각 자체가 이미 '말'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1. 우리는 언어 없이 사고할 수 있는가?

많은 사람들은 “말은 못 해도 생각은 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사고는 대부분 언어를 매개로 일어난다. 뭔가를 고민하거나 상상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말을 떠올리고 문장을 구성하며, 때로는 내면의 독백으로 논리를 정리한다. 이를 언어심리학에서는 ‘내면 언어(inner speech)’라고 부른다. 러시아 심리학자 비고츠키(Vygotsky)는 사고가 언어로 전환되면서 고차 인지 기능이 발달한다고 주장했으며, 언어는 단지 표현 수단이 아니라 사고의 구조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아이가 말을 배우는 과정은 동시에 세상을 구분하고 범주화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색깔을 설명하거나 감정을 표현할 때 우리는 단어를 통해 그것들을 명확히 인식하고 정의한다. 언어가 없다면 사고도 명확하게 구조화되기 어렵고, 감정도 정제되지 않은 상태로 남게 된다. 사고는 언어를 통해 정리되고, 언어는 사고를 가능하게 만든다.

2. 단어는 세상을 쪼개는 도구다

언어는 단지 생각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고 조각내는 칼날에 가깝다. 사피어-워프 가설에 따르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세계 인식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어떤 언어는 눈(雪)의 상태에 따라 여러 단어를 구분하는 반면, 어떤 언어는 ‘눈’이라는 단어 하나로만 표현한다. 에스키모어에는 눈을 표현하는 단어가 20개 이상 존재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언어의 세분화 정도가 곧 관찰의 정밀도를 결정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중국어에는 방향어가 발달해 있어 공간을 더 정밀하게 인식하지만, 영어 사용자는 주로 좌우 개념에 의존한다. 즉,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우리는 세상을 다르게 잘라 보고, 다르게 이해한다. 단어는 단지 명칭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구조화하는 방식이며, 때로는 우리가 무엇을 '보는지', '모르는지'까지 좌우한다.

3. 단어 없는 사고는 어떤 모습일까?

그렇다면 언어가 없는 상태에서의 사고는 불가능한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다. 예술가, 디자이너, 운동선수는 이미지, 동작, 리듬, 감각 등 비언어적 방식으로 사고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우리가 꿈을 꿀 때는 언어가 아닌 시각과 감정 중심의 사고가 펼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는 정확성, 논리성, 타인과의 공유성이 떨어지기 쉽다. 언어를 갖추었을 때, 우리는 복잡한 개념을 나열하고, 논리적으로 정리하며, 이를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다. 실제로 언어 손상을 입은 환자들의 사례에서, 언어 능력과 사고 능력이 동시에 약화되는 현상이 보고되며, 이는 언어와 사고가 서로 긴밀히 얽혀 있다는 증거로 제시된다. 물론 예외도 있다. 예를 들어, 한 언어를 배우기 전에 이중언어 환경에 있던 아이는 각각의 언어로 다른 사고방식을 보일 수 있다. 이처럼 사고는 언어를 통해 풍부해지고 정교해진다. 언어는 생각을 '더 잘' 하기 위한 도구인 동시에, 새로운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발판이다.

4. 우리는 언어를 통해 생각을 만들고, 다시 언어를 바꾼다

결국 사고와 언어는 순환 구조를 가진다. 우리가 언어로 생각하고, 그 생각은 다시 새로운 언어를 만들며 확장된다. 예컨대, ‘혼밥’, ‘시그널’, ‘짠내’ 같은 신조어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경험이나 감정을 새로운 단어로 표현함으로써, 그 현상을 인식하고 사고하게 만든다. 단어가 생김으로써 새로운 관점과 공감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인공지능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현상은 뚜렷하게 드러난다. 사람들이 챗GPT나 음성비서를 사용할 때, 질문을 더 잘 구성하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문장으로 정리하는 훈련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생각은 더욱 구조화되고 언어는 점차 날카로워진다. 언어는 사고를 표현하는 수단인 동시에, 새로운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생성 엔진이다. 우리는 단어로 생각하고, 그 생각은 다시 우리 안의 언어를 바꾼다. 그렇게 우리는 언어를 만들고, 언어에 의해 다시 만들어진다.

 

언어는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니다.
사고를 ‘형태 있게’ 만들어주는 틀이다.
예를 들어 “기분이 나쁘다”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우리는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그걸 규정함으로써 그 감정을 **‘이해 가능한 경험’**으로 만든다.

심리학자 비고츠키는 “사고는 언어를 통해 정리된다”고 말했다.
말이 곧 사고의 그릇이라는 뜻이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며 세상을 배운다’는 것도,
결국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언어를 통해 구조화된다는 이야기다.

또한, 외국어를 배울 때 생각이 느려지는 이유는
사고를 표현하는 도구인 언어가 낯설기 때문이다.
단어가 머릿속에 없으면 생각도 흐릿해진다.
그만큼 언어는 사고의 핵심적 조건이다.

 

사람은 언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
‘말’은 감정을 규정하고, 판단을 구조화하며, 관계를 명명한다.
우리는 단어 없이 감정을 느낄 수는 있어도,
그걸 ‘이해하고 전달하기 위해선 반드시 언어를 빌려야만 한다.’

그렇기에 언어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 사고의 일부이자 형태다.
우리는 단어로 생각하고, 단어로 세상을 이해한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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