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세계.34-언어의 장애
1. 언어장애란 무엇인가: 단순한 발음 문제가 아니다
언어장애는 단순히 말을 더듬거나 발음이 부정확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언어장애는 의사소통에 필요한 언어 이해, 표현, 사회적 상호작용의 어려움을 모두 포함한다. 말더듬(stuttering), 음운장애(phonological disorder), 실어증(aphasia), 자폐 스펙트럼 내 언어 지연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아동기에는 언어 발달 지연으로, 성인기에는 사고나 뇌 손상 후 실어증 등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언어장애는 외견상 큰 신체 장애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많은 경우 단순한 ‘말이 느린 사람’, ‘소심한 사람’으로 오해된다. 하지만 이들은 정보를 정확히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제한이 있으며,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소외되기 쉽다. 언어는 인간 관계의 핵심 도구이기 때문에, 언어장애는 삶의 질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단순한 기능적 결함이 아니라, 전인적 삶의 장벽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2. 언어장애를 둘러싼 사회적 편견과 오해
언어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종종 지능이 낮거나 의사소통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특히 말이 더딘 사람에게 ‘답답하다’, ‘멍청하다’는 인식이 붙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언어장애는 인지능력과는 무관하며, 말의 흐름이나 발화 타이밍이 다를 뿐이다. 사회적 낙인은 이들의 자존감을 낮추고, **사회적 회피 행동(social withdrawal)**을 유도하게 된다. 실제로 언어장애 아동은 또래 집단에서 따돌림을 경험할 확률이 높으며, 성인의 경우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에서 불이익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가 언어를 지나치게 능률 중심으로 이해하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언어를 ‘잘하는 사람 vs 못하는 사람’으로 나누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사람으로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언어장애는 극복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사회적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할 하나의 스펙트럼이다.
3.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 사회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현대 사회는 빠른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하면서, 느리거나 비표준적인 언어 사용자를 배제하기 쉬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공공기관이나 병원, 법률 상담 등 중요한 영역에서 표준어, 고속 응답, 명확한 발화가 전제되며, 언어장애인은 이 과정에서 자주 불이익을 겪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AAC(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즉 보완 대체 의사소통 시스템이 확산되며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 그림카드, 키보드, 음성합성기, 앱 기반 대화 도구 등 다양한 수단이 언어장애인의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한다. 아래는 주요 보완 대체 의사소통 수단의 예시다:
그림카드 | 시각 이미지로 단어 표현 |
음성합성기 | 입력된 텍스트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기 |
모바일 앱 | 터치 기반의 대화 구성 앱 (예: 말랑말랑) |
사회적 측면에서도 유치원, 초등학교, 병원 등에서 언어차별 예방 교육이 도입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언어장애를 ‘치료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보는 전환점이 되고 있다.
4. 언어를 재정의할 때, 모두가 말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언어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언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한다. 언어는 정보를 전달하는 효율성만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감정과 관계를 맺고, 존재를 인정받는 방식이기도 하다. 말을 더듬더라도, 단어가 불분명하더라도, 의사를 표현하려는 ‘의지’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환경’이 마련된다면, 언어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우리는 언어장애인을 도와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소통 방식을 함께 만들어갈 협력자로 바라보아야 한다. 다양한 말하기 방식은 사회적 약점이 아니라, 언어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순간, 우리가 진짜 언어에 대해 배울 수 있다. 말의 속도보다, 그 속에 담긴 의미에 집중하는 사회가 될 때, 진정으로 모두가 말할 수 있다.
🔗 참고자료
- American Speech-Language-Hearing Association: What Is a Speech or Language Disorder?
- 한국보완대체의사소통학회 공식 자료집
- 김윤정 외 (2019). 『언어장애아 교육』.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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