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언어의 세계

언어로 분열되는 사회: 말이 증오를 부른다면

 

언어로 분열되는 사회: 말이 증오를 부른다면
위 이미지는 본 게시물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된 AI 이미지입니다.

언어의 세계.37-언어의 분열


1. 언어는 단지 소통이 아니라 힘의 구조다

우리는 흔히 언어를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언어는 그 자체로 현실을 구성하고, 사회적 권력을 행사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언어학자 피에르 부르디외(Bourdieu)는 언어를 ‘상징적 권력’이라 부르며, 발화하는 위치와 맥락이 언어의 힘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정치인의 말 한 마디는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언론의 단어 선택은 여론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러한 힘의 구조는 때로 특정 집단이나 이념을 배제하거나 공격하는 데 사용된다. ‘귀족노조’, ‘맘충’, ‘틀딱’ 같은 단어들은 단순한 별칭이 아니라, 특정 계층에 대한 비하와 분열을 조장하는 언어적 도구다. 언어는 그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현실을 설계하고 나누는 도면이 되기도 한다.

2. 혐오 표현은 어떻게 확산되는가?

디지털 공간에서의 언어는 익명성과 속도, 반복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 구조는 혐오 표현이 빠르게 확산되고 강화되는 토양을 제공한다. 특히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과 낙인을 고정시키는 언어는 단순한 표현을 넘어 정체성과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여혐”, “남혐”으로 대표되는 젠더 갈등 언어는 단지 의견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증오를 표출해도 된다는 허용구조를 형성한다. 아래는 한국 사회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혐오 표현의 유형 분류다:

[혐오 대상대표 표현 예시특징]
성별 김치녀, 한남충 성적 비하와 고정관념 투사
계층 틀딱, 흙수저 나이·소득에 따른 차별 언어
지역 경상도놈, 전라도년 역사적 갈등에 뿌리둔 차별적 지칭
인종/국적 짱깨, 흑형 외국인 혐오와 조롱적 묘사


이러한 언어는 단지 불쾌감을 유발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적 긴장을 고착화하고, 혐오를 정상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3. 혐오의 언어는 왜 쉽게 소비되는가?

혐오 표현은 자극적이며, 쉽게 기억되고, 감정적 공감을 유도하기 쉽다. 이는 대중매체나 SNS 알고리즘이 자극성과 반응성에 기반해 콘텐츠를 추천하는 구조와 맞물리며, 분열적 언어가 클릭 수를 높이는 전략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혐오 언어가 집단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장치로 사용되며, ‘그들만의 언어’를 통해 타인을 배제하고 정체성을 공고히 한다. 이러한 구조는 사용자로 하여금 비판적 인식 없이 혐오 언어를 반복·재생산하게 만든다. 특히 짧고 간결한 단어들은 ‘밈(meme)’처럼 확산되며, 더는 발화자의 의도보다 언어 자체가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현상까지 발생한다. 이처럼 혐오의 언어는 단지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구조화된 플랫폼 환경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상징적 폭력이다.

4. 분열을 넘어 공존으로 가기 위한 언어적 선택

언어는 분열을 만들 수 있지만, 반대로 공존을 설계하는 힘도 지니고 있다. 혐오 표현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은 단지 ‘금지’나 ‘검열’이 아니라, 대안 언어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내고 확산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그분’ 대신 ‘그 사람’, ‘불법 체류자’ 대신 ‘미등록 이주민’, ‘틀딱’ 대신 ‘시니어 시민’과 같이, 언어의 방향을 바꾸는 작은 선택이 모이면 인식도 바뀐다. 또한 교육과 미디어는 언어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키우는 도구로 활용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언어를 통제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는 윤리다. 발화의 자유는 비난이 아니라 존중의 전제로 이어질 때, 언어는 사회를 잇는 다리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느냐의 선언이기도 하다.

 

🔗 참고자료

  • Bourdieu, P. (1991). Language and Symbolic Power
  • Naver 뉴스댓글 혐오표현 통계 보고서 (2022)
  • 혐오 표현 대응 매뉴얼: 서울시 인권센터

개인정보처리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