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세계.36-익명성의 언어
“이걸 왜 올려요?”
“진짜 한심하다.”
온라인 기사나 영상, SNS의 댓글에서 우리는 이런 말을 흔히 본다.
현실에서는 차마 하지 못할 말들이 댓글 창에서는 쉽게 쏟아진다.
그 이유는 단순한 감정 배출이 아니라,
‘익명성’이라는 심리적 장치가 언어를 바꾸기 때문이다.
1. 온라인 댓글은 왜 종종 공격적인가?
인터넷 댓글은 의견을 표현하는 공간이자, 때로는 언어적 폭력의 출발점이 된다.특히 뉴스 기사, 유튜브, 커뮤니티 등에서 익명 댓글은 지나 친 조롱, 비난, 혐오 표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온라인 탈억제 효과(Online Disinhibition Effect)**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익명이라는 가면 뒤에서, 현실에서라면 감히 하지 못할 말을 쏟아낸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결여가 아니라, 언어 사용이 맥락에 얼마나 의존적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언어학적으로도 인간은 발화의 책임을 지는 상황에서는 더 정제된 표현을 사용하고, 상황 통제력이 사라질수록 공격적이거나 감정적인 표현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댓글의 공격성은 언어가 사회적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2. 익명성과 언어 공격성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많은 연구에서 익명성이 언어 공격성을 증폭시킨다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의 2021년 연구에서는 실명제 댓글과 익명 댓글을 비교한 결과, 익명 댓글에서 비속어, 과장어, 평가절하 표현이 2.7배 이상 많았다는 분석이 있다. 이는 언어적 표현의 강도나 극단성에 있어 책임감의 유무가 결정적 변수가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언어학적으로 익명성은 '발화 주체'가 불분명해지는 조건이기 때문에,
발화의 정체성과 맥락 정보를 생략하거나 왜곡하게 만든다. 예컨대, “너 같은 인간은 사라져야 해”라는 말이 익명 댓글에서는 위협의 무게감 없이 쓰이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 언어가 책임 있는 구조로 작동할 수 있으려면, 발화자와 수신자 사이에 사회적 관계망이 보장되어야 한다.
3. 댓글의 언어 구조와 표현 방식의 특징
온라인 댓글은 짧고 즉각적인 반응이 중심이라, 문법적으로 불완전한 문장, 명령형, 단어 중심의 조롱이 많다. 예: “꺼져”, “틀딱”, “팩폭이네”, “너무 구질구질하다” 등은 비유와 축약, 유행어를 결합한 공격적 표현이자, 상대의 자존감이나 존재 자체를 겨냥하는 언어 전략이다.
언어학자 Deborah Tannen은 이러한 현상을 **‘논쟁적 담화 양식(agonistic discourse)’**라 부르며, 디지털 사회에서는 논쟁의 언어가 일반화된다고 지적한다. 또한 댓글은 ‘공개된 공간에서의 사적 발화’라는 점에서 청자에 대한 고려 없이 오로지 자기표현 중심의 언어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언어의 사회적 기능 중 ‘관계 형성’이나 ‘조정’이 약화되고, 일방적 선언과 감정 투사가 강화된다는 뜻이다. 결국 댓글 언어는 비대면성과 사회적 거리감이 결합된 독특한 담화 형식이다.
4. 우리는 댓글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댓글 문화는 언어 윤리와 디지털 리터러시의 중요한 시험대다. 우리가 댓글을 쓰거나 읽을 때, 그 언어가 어떤 사람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지,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인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플랫폼에서는 실명제, 필터링, 신고 기능 등 기술적 장치를 통해 대응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건 사용자 개개인의 언어 선택에 대한 감수성이다. 예를 들어 아래 표처럼 언어의 의도를 성찰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습관이 필요하다:
① 타인을 공격하는 표현인가? | “이 표현은 상대에게 수치심을 줄 수 있는가?” |
② 맥락에 맞는 발화인가? | “지금 이 상황에 적절한 말투인가?” |
③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가? | “비난이 아니라 감정 전달로 바꿀 수 있는가?” |
댓글은 단지 쓰는 말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언어 윤리를 보여주는 지표다.
익명이라는 방패 아래, 언어가 칼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언어를 쓰는 우리의 책임이다.
심리학에서 '온라인 디신히비션 효과(disinhibition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현실보다 더 과격하거나 솔직한 표현을 하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특히 익명성이 보장되는 구조에서는
자기 통제력이 낮아지고, 언어의 공격성이 증가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실제로 실명제를 시행한 몇몇 커뮤니티에서는
욕설과 비하 발언이 30% 이상 감소했다는 연구도 있다.
반면, 익명이 유지되는 곳에서는
단순한 의견 표현을 넘어선 개인 공격, 조롱, 감정적 분출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익명성은 책임감을 줄이고,
언어에 담긴 감정 필터를 제거한다.
그래서 평소라면 삼켰을 말도 댓글에서는 쉽게 타이핑하게 되는 것이다.
댓글은 개인의 표현이지만, 동시에 사회의 언어를 반영한다.
그래서 댓글이 거칠어질수록 온라인 사회 전체의 언어 수준도 낮아진다.
익명성은 자유일 수 있지만,
그 자유가 타인을 해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책임이 필요하다.
우리는 댓글을 쓸 때
그 언어가 말이 아니라 칼이 되지 않도록 더 조심스럽게 선택해야 한다.
온라인이라고 해서 ‘사람’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 참고자료
- Suler, J. (2004). "The Online Disinhibition Effect"
- 서울대 언어정보연구소 (2021). “온라인 댓글의 공격성 언어 분석 보고서”
- Tannen, D. (1998). The Argument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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